변산 우금산.
우금산의 상징 울금(우금)바위
변산 우금산(禹金山)은 개암사(開巖寺)의 병풍역할을 하는 산으로 변한과 백제
멸망의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있다.
정상부의 우금산성은 삼국시대 석축산성으로 3km 넘는다.
신라 장군 위금(位金)이 성을 쌓아 위금산성, 삼한시대에 우(愚)와 진(陳) 두 장군이
성을 쌓고 주둔해 우진산성으로 불린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이 성은 백제 의자왕 20년(660년) 무렵 나당연합군 김유신 장군과 소정방에게
패한 유적지로 보고 있다.
하나의 석성을 놓고 여러 이름이 있지만 우금산성으로 통일하는 게 좋을 듯하고, 일곱
봉우리 전체를 부를 때는 우금산, 정상의 바위는 우금암(울금암)으로 부르기도 한다.
주류성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멸망하는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비극의 역사
현장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개암사 입구에는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 김유신 장군의 사당이
버티고 있다. 역사는 승자의 편.
따라서 그 사당은 백제의 마지막 저항군을 섬멸하고 소정방과 김유신이 축배의 술잔을
나눴을 것이고, 사당은 그 후 지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들머리 지석마을 만적사 입구
젖소 목장이 나오고
오랫만에 보는 밀밭
오디(뽕나무 열매)
가정집 같은 암자 만적사
만적사 뒤 기차바위
기차바위가 아니라 마당바위 슬랩이다.
부안 상서면 들판
마당바위에 걸터 앉아
멀리 우금산성쪽 암봉 하나 조망
노간주나무 군락지
이런 시그널을 곧이 곧 따라갔다.
이렇게 비룡상천봉이 너무 가까이 보이는것이 아니었다.
여기가 내려서는 아니될 우슬재 같다. 잘못타고 내려온 것이다.
들어오면 벌금이라고 무인방송 맨트가 흘러서
한참을 돌아서 능선을 타고 오르니 이런 헬기장이 나오고
아뿔사 안면있는 쇠뿔바위봉 가는 안부능선 나온다. 우금산은 180도 반대편 앞쪽에 있다.
서둘러 어수대 0.5k 방향으로 내려간다.
쇠뿔바위 비룡상천 들머리 어수대 나온다.
어수대 우찌하다 보니 벌써 세번째 만난다. 영원히 마지막이 될것이다.
어수대(御水臺)
백제 의자왕이 이곳에서 목욕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신라 경순왕이 여기를 지나다가 물을 마셨다는 이야기도 있는 곳이다.
어수대 옆에 부안 명기(여류시인)인 매창의 시 한수가 있으니
세상의 허무를 표현한 싯귀가 우리네 삶을 뒤돌아 보게한다.
"천년 옛절에 님은 간데 없고
어수대 빈터만 남아 있네
지난 일 물어 볼 사람도 없으니
바람에 학이나 불러 볼까나"
어수대 지나고 무슨 크다란 저수지 지나고 독립가옥 지나고 길도 아닌 생잽이를
치고 오르며 우금산성 우금산 등로를 찾아가는 길에 겁나는 지네가 시위를 한다.
드디어 우금산성길 합류되었으나 산방 일행들은 한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다 제대로 벌써 다 지나간 모양이다. 많은 발자욱들이 등로에 보인다.
울금바위 지척으로 보인다,
처음에 오면서 당겨보았던 그 암봉이 아니드냐
우금산성 3-4k나 된다고 하는데 믿기지 않는다.
삼예봉 덕성봉 방향 같다.
우금산 정상석은 우금산성 대가리 쯤에 위치 하였다.
우금산 인증.
우금산 정상석에서 쳐다보는 우금산의 메인 울금바위
굳바이 우금산
개암 저수지 내다 보인다.
책바위 같은것 한점 나오고
울금바위 원효굴을 통해서 울금바위 올라간다.
서래야 박씨는 여기가 우금산이라고 특유의 비닐 코팅명패를 달아 놓았다.
내려가아 할 개암사 보인다.
우금바위 한켠에 결터앉아 멀리 비룡상천봉을 배경 깔고
의상봉 줌인
비룡 상천봉 의상봉
울금바위는 너무 크서 가까이 올라가면 그 실체가 부부부분 밖에 안보인다.
개암사 개암지 내려다 보기
울금바위 여러단면
울금바위에서 당겨보는 우금산성 우금산 정상
개암사 줌인 생각보다 대찰이다.
개암사 입구로 추정
개암사 위로 시간이 촉박하여 잘라먹은 산봉들이 보인다.
비룡상천봉 의상봉 방향 마지막으로 조망하고
원효굴로 다시 돌아내려가며 보는 우금바위 여러각도
다시 돌아내려온 원효굴
오리지날 우금굴
백제 신라 나당연합군 역사가 깃든 우금굴 앞에서
개암사 여기저기
개암사 큰법당 처마밑 모서리에 이름모를 새 새끼들이
개암사는 조계종 선운사의 말사로 백제 무왕(634년) 때 묘련왕사가 창건했다.
개암의 유래는 변한의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난을 피하여 성을 쌓을 때 우(禹).
진(陳) 두 장군에게 왕궁의 전각을 짓게 하고, 동쪽은 묘암(妙巖),
서쪽은 개암(開巖)으로 불렀다.
원효와 의상대사가 우금암 밑 우금굴에서 수도하며 중수했다.
1314년(고려 충숙왕) 원감국사가 조계산 송광사에서 와서 중창하여 30여 동의 건물을
세우고 대승불교의 경전인 능가경을 가르쳤기에 능가산으로 부르고 있다.
조선 중기의 건물인 대웅전(보물 제292호)과 동종, 그리고 중건사적기가 있는데,
백제 부흥군이 주류성에서 왜병과 나당연합군의 전쟁을 기록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개암사 나오면서 쳐다보는 우금바위
내변산 국립공원 소속의 비룡상천봉 쇠뿔바위봉을 사연이 있어서 두번을 올라간 이력이
있는데 그 앞쪽으로 우금산 우금바위가 유별나게 산행 내내 사라지지 않고 쳐다보여서
언젠가 한번은 가보야할 산이다 하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서두에 산방에서 따온 산행지
설명에 의하면 우금산성도 있고 그 아래 개암사라는 천년 고찰도 있다는 것은 이번에 알은
사실이다. 그런데 우금산은 산꾼들이 잘 모르고 있고 마땅한 등산루트도 개발되지 않은
상태라 이렇다 할 개념도가 없고 있다해도 옆구리 미로길이 많아서 자칫 길을 잃는 수가
많다는 얘길 들었다. 나와 동행자 한분도 산방에서 내준 아래 개념도 상으로 진행하다가
순간 엉뚱한 길로 빠져서 한참을 알바하다가 난데없는 비룡상천봉 쇠뿔바위봉 들머리 어수
대로 갔다가 돌아나오는 고생을 감수하고 시간이 모자랄것 같아서 삼예봉 갈림길과 341.8
봉 279.6봉 등를 잘라먹고 개암사로 바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호기롭게 삼예봉까지
까지 찍고 오겠다던 애초의 게획은 무참히 사라지고 말았다.
2013년도 12월 비룡상천봉에서 쳐다보았던 우금산 울금바위 자료사진
+++ 끝 +++
2018.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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