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 경주 안태봉 금욕산 금곡산 무릉산.

 

 

 

 

 

 

 

 

 

 

 

 

 

 

 

 

 

 

 

 

 

 

 

 

 

 

 

 

 

 

 

 

 

 

 

 

 

 

 

 

이상은 2017년 8월2일 산행 사진 입니다. 다음은 오늘(2022년 8월11일)

올라갔던 화산곡 무릉산 사진을 보태어서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 무릉산편.

 

5년전 국제신문 금욕산 금곡산 코스에 그 앞산의 금욕산 무릉산이 빠져 있었다. 이번 한마음

산방에서 국제신문 코스 역순으로 무릉산을 먼저 등정하고 금욕산 금곡산으로 건너 갔다가

금곡사로 내려와서 원광법사 부도탑 보물 1점을 배알하고 화산지를 거쳐서 두류마을로 원점

회귀 한다 하였다. 그당시 눈에 밟혔던 무룡산 하나를 이유 들어서 따라 가볼 일이다 싶었다.

 

 

 

 

 

 

 

 

 

 

 

 

 

 

무릉산 인증 발도장 찍고 한마음 선수들과 함께 금욕산 금곡산을 다시 가보든지

적어도 생략코스(B코스) 덕고개재에서 금곡사로는 빠져서 내려온다 작심하고 갔

으나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것이었다 준비해간 우산을 펼쳐들고 아랫도리가 축축

한채로 몹씨 부실했던 등산로를 헤치고 진행 하기가 한심스러워 나는 여기 까지 

입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 예전에 가본곳이니 욕심을 거두겠습니다. 하고는 화산

저수지로 중간 탈출을 감행하고 말았다는 ...  

 

 

 

 

 

★ 2010년 7.15일자 국제신문 근교산 그너머 자료에서 

 

높지는 않아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근교산이 더러 있다.

이런 산들을 찾아가보면 빼어난 암릉이나 조망을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산길 구석구석에 녹아 있는 역사와 전설 설화 등과 그에 얽힌 현장을 직접

확인하며 야트막한 능선을 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신라 천년의 고도'인 경주는 도시 자체가 이야기 덩어리이긴 하지만 권역

내 어느 산을 가더라도 한두 개씩은 이야기를 품고 있기 마련이어서

근교산을 즐기는 산꾼들에게는 더욱 매력적인 고장이다.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이 이번 주 답사한 경주 안태봉(安胎峰·339m)~

금곡산(金谷山·521m) 코스 역시 산 자체가 뿜어내는 웅장함이나 아기

자기함은 덜하지만 많은 이야기가 산자락에 마치 보석처럼 박혀 있다.

게다가 여름 휴가철이 가까워도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으니

한가롭게 걸을 수 있어 더욱 좋다.

안태봉~금곡산 코스에 숨어 있는 옛날 이야기는 총 네 편이고

공간적 배경도 네 곳이다. 우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들른

진덕왕릉(사적 제24호)에서는 신라 제28대 왕인 진덕(여)왕을 만난다.

그에 앞서 들머리로 향할 때 거쳐가는 오류리 등나무(천연기념물 제89호)

에서는 신라 때 이름 없는 자매와 그들이 동시에 사모했던 이웃 총각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리고 안태봉에서는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만삭의

몸을 이끌고 산꼭대기까지 올라야 했던 신라 수도 서라벌의 이름 모를

여인들을 떠올리게 된다. 마지막으로 날머리 인근의 금곡사에서는 신라

화랑의 절대 규율인 세속오계를 전한 원광법사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안태봉~금곡산 코스는 천년왕국 신라의 옛 이야기 속으로 떠나는

산행길이라 할 수 있다.

전체 산행은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 진덕왕릉 앞 주차장에서 출발,

남쪽에서 북쪽으로 진행한 후 금곡사에 들렀다가 안강읍 두류1리에서

끝맺는다. 자세히 살펴보면 진덕왕릉~능선 갈림길~292봉~송전철탑~

안태봉~말구불재~나원재~금욕산~내태재 금곡산 갈림길 삼거리~

금곡산~계곡~금곡사 입구 삼거리~금곡사(되돌아 나가서)~삼거리~

화산곡지~두류1리 버스 종점으로

진행된다. 총거리 18.5㎞에 달하니 만만찮다.

순수하게 걷는 시간만 5시간30분, 휴식시간 등을 더하면 7시간쯤 걸린다.

우선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오류리 등나무를 만나보자.

천연기념물 제89호로 지정돼 있는 이 등나무는 신라 때부터 왕의 사냥터

역할을 했다고 해서 '용림'이라고 불렸던 곳. 네 그루의 거대한 등나무와

두 그루의 팽나무가 있는데등나무 두 그루가 팽나무 한 그루씩을 감아

오르는 모양이다. 높이만 17m에 달하는 이 등나무에는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신라 때 이 마을에 살던 친자매가 둘이 동시에 이웃집 총각을 연모

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애가 좋았던 이 자매는 서로에게 총각을 양보하겠

다는 마음을 먹으며 평화롭게 살아갔다. 그러던 중 백제군이 침범해 오자

이 총각은 전쟁터에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사 소식이 전해졌다.

이 소식을 접한 자매는 우물에 몸을 던져 숨졌다.

하지만 정작 죽었다던 총각은 늠름한 화랑이 되어 귀향했다.

그런데 자매의 소식을 들은 총각도 곧바로 우물에 몸을 던져

자매의 뒤를 따랐다. 자매가 몸을 던진 후 등나무 두 그루가 자랐고 총각이

숨지자 팽나무 한 그루가 자랐는데 두 그루의 등나무는 1000년이 넘도록

이 팽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감아 안고 있다는 이야기다.

오류리 등나무에서 500m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진덕왕릉 앞 주차장.

잠시 200m쯤 떨어진 진덕왕릉에 들른다.

잘 닦인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 닿은 진덕왕릉은 그 흔한 석상조차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선덕여왕 말년에 발생했던 비담의 난을 김유신 김춘추와

함께 평정하며 즉위한 진덕여왕은 비담과 그 일당 30명을 처형하고 백제의

계속된 침략에 맞서 김유신으로 하여금 국방을 튼튼하게 했던 신라 제28대

왕이다. 사촌 언니였던 선덕여왕과 마찬가지로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즉위

7년 만인 654년 사망, 김춘추(무열왕)에게 왕위가 이어졌지만 후일 삼국

통일의 위업을 이룰 수 있도록 기틀을 다진 업적을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후사가 없었던 탓인지 왕릉의 분위기가 어쩐지 쓸쓸하다.

솔숲 사이로 부는 서늘한 바람을 벗 삼아 왕릉을 돌아보며 백제의 침범에

대항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당나라와 불평등 동맹까지 맺어가며 고군분투

했을 여왕의 고뇌와 삶에 대해 생각한다.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초소를 지나 오른쪽에 고등골못을 끼고 20m쯤 가다가 왼쪽 산길로 들어선다.

처음부터 가파른 오르막. 진분홍 패랭이꽃이 반겨주는 능선 갈림길까지 15분

가량 된비알을 치고 오르는데 어느새 몸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길은 나원리 나원사 방향에서 오르는 길이다.

나원사에는 국보 39호인 나원리오층석탑을 볼 수 있다.

능선길을 따라 왼쪽으로 오른다. 10분쯤 완만한 오르막을 따라가면 갈림길.

왼쪽은 진덕왕릉에서 곧바로 올라오는 길이다. 직진한다. 2분 후 292봉을 지나

10분쯤 더 가면 영일 정씨묘를 지난다. 길은 별로 헷갈릴 것 없이 뚜렷하다.

첫 번째 송전철탑이 있는 작은 봉우리를 오른쪽으로 우회해 계속 오르면

20분만에 안태봉 정상에 닿는다. 삼각점이 있을 뿐 정상 표지석은 없다.

이 안태봉이라는 이름은 옛날 가뭄이 들 때면 마을 사람들이 아이를 밴 만삭의

부녀자를 데리고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고 해서 붙은 것이라 한다.

아이 밴 몸으로 어쩔 수 없이 산 꼭대기까지 올라야만 했을 여인들의 수고로움을

생각하자니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산꾼의 마음이 썩 편치만은 않다.

완만한 내리막길은 걷기에 더없이 편안하다. 25분쯤 걸었을까.

능선이 탁 트이는 곳에 송전철탑과 연일 정씨 묘가 있는 말구불재에 닿는다.

발아래로 경부고속도로 건천IC에서 포항으로 가는 국도 20호선 말구불터널

(나원터널)이 지나가고, 마치 고속도로 같은 도로 위를 신나게 질주하는

자동차들도 보인다.

말구불재에서 나원재를 지나 금욕산까지는 45분가량 걸리는데

뚜렷한 능선 길만 잘 따르면 된다. 정상석이 없는 금욕산 정상에서는

Y자 갈림길을 만나는데 오른쪽은 무릉산(471.6m)으로 가는 방향이니

헷갈리면 안 된다.
10분 후 세 번째 송전철탑을 만난다.

물방울 맺힌 노란 원추리꽃이 길손들을 맞아준다.

철탑을 왼쪽에 끼고 우측 1시 방향으로 난 길을 따르면 작은 무덤을 지나고

능선은 좀 더 이어지는데 네 번째 철탑을 지나면서는

작은 봉우리 왼쪽 허리를 감아 돈다.

이윽고 널따란 안부 갈림길. 왼쪽은 내태제를 거쳐 낙동정맥에 합류,

어림산까지 갈 수 있는 길이지만 금곡산은 오른쪽이다.

눈앞의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오른쪽 사면길을 따라 안부에 합류한 뒤

10분쯤 더 가면 금곡산 정상. 이곳에서도 길은 두 갈래다.

오른쪽은 곧바로 화산골 상류로 떨어져 금곡사로 갈 수 있는 길이다.

 

금곡사는 원광법사 부도탑이 있는 곳이다.

선덕여왕의 부친인 진평왕 때 세속오계를 설파했던 고승의 부도탑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부도로 알려져 있다.

삼거리로 돌아와 임도를 따라 화산곡지를 거쳐 날머리인 두류1리 버스 종점

까지는 약 3.5㎞를 더 내려가야 한다. 넉넉히 잡아 5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오류리에서 시작한 산행을 두류리에서 마친다.

◆ 떠나기 전에

- 금곡산 명칭 3개 모두 원광법사와 관련

경주 금곡산은 삼기산(三岐山) 비장산(臂長山) 등의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그런데 금곡산이나 삼기산 비장산 등 3개의 이름을 현대인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원광법사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금곡산의 원래 이름은 삼기산이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 의해(義解) 편 첫머리에 나오는

원광법사 이야기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원광은 10대 때이던 6세기 중반 출가해 삼기산 아래 계곡에서 수도를 하다가

그 자리에 금곡사를 창건했다. 20대 후반 또는 30대 초반 이 절을 떠나

중국 유학길에 올랐으며 진나라와 수나라에서 큰 깨우침을 얻고 명성을 떨친 뒤

서기 600년(진평왕 22년) 신라로 돌아와 가장 먼저 절을 찾았다.

이후 가슬갑사로 불렸던 청도 운문사 주변에서 귀산과 추항 등에게 '세속오계'를

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630년께 숨을 거뒀는데 진평왕이 왕족의 장례에

못지않을 만큼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게 했으며, 부도탑을 삼기산 금곡사에

건립했다고 한다.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삼기산은 금곡사의 이름을 따라

금곡산으로 바뀌었다. 또 하나의 이름인 비장산도 원광법사와 관련이 깊다.

원광법사가 금곡사에 머무를 때 산신이 나타나 유학을 권유했는데 귀국 후 다시

이 절에서 재회한 산신에게 "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달라'고 하자 산신이

"내일 아침 동쪽 하늘 끝을 보라"고 알려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원광법사가 바라본

동쪽 하늘에 거대한 팔뚝이 하늘 끝까지 뻗어 있는 모습이 나타났는데

이 때문에 비장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문의=국제신문 주말레저팀 (051)500-5169 이창우 산행대장 011-563-0254

(http://yahoe.tistory.com)

 

 

▲경주 안태봉 금곡산 주변 산경도.

=== 끝 ===

1차 2017.8.2.

2차 2022.8.11

 

연꽃 천성산 예쁜 연잎 속에 수줍은 듯 얼굴을 내민 연꽃의 요염한 자태를 뽐내며 눈길을 발길을 멈추게 한 빠져들게 한 꾸미멊는 진흙 속의 아름다운 연꽃의 향연 오늘은 연꽃 여인을 생각해봅니다

千聖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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