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등운곡의 향기(범어사 등나무 군락지)
지금 계곡에는 가득 등꽃이 피어 밝은 보랏빛 구름송이를 만들었다.
등운곡(藤雲谷)이라는 이름 그대로다.
등꽃이 피지 않았을 때의 자연림 모습도 웅장하고 신선한 감동을 주지만
지금 등꽃이 핀 계곡은 아주 다른 모습이다.
500여 그루의 등나무가 모두 꽃을 피우고 가지에는 갖가지 새들이 앉아 노래하니
1년 중 가장 화창하고 순하고 곱다.
길을 따라 걸으며 맡게 되는 등꽃의 향긋한 냄새는
어릴 적 학교에서 예쁜 여선생님이 지나가고 나면 주위에 남던 그 좋은 냄새 같다.
아카시아의 짙은 향과는 다르다.
아직 다 피지 않은 꽃송이들도 많아 아마 이번 주말쯤이면 더
아름다운 장관을 이룰 것 같다. 꽃잎이 한 잎씩 바람에 떨어지기도 하여
주말이면 바닥에 보랏빛 수를 놓을 거다.
그 길에서 만난 한 등산객은 해마다 등꽃이 필 때 찾아온다며
올해 등꽃이 지난해보다 훨씬 예쁘다고 말해준다.
그는 이 길을 따라 원효암으로 간다고 한다.
다른 나무의 줄기를 휘감아 올라가며 사는 등(藤)나무는 칡 갈(葛)자와 함께
일이 얽히어 풀리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갈등(葛藤)'이란 말을 만들게 했다.
숲에서 공생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 옛선비들은 저 혼자 살겠다는
소인배에 비유하여 등나무를 싫어하기도 했다.
이 곳 범어사 등나무군락도 천연기념물로 보호해주었더니
주위 다른 나무들을 모두 뒤덮어버렸다. 그래서 몇 년 전, 너무 심하게 뒤덮고
있는 등나무 줄기를 잘라주어 같이 살도록 조치를 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보기에 따라서 다른 나무를 감고 오르는 등나무의 모습에서
애정을 본 사람들은 사랑의 전설을 만들기도 하였다.
등나무 잎을 달여 먹으면 사이가 안 좋은 부부라도 금슬이 좋게 된다 하고,
등꽃을 따서 말려 신혼부부의 베개 속에 넣고 자면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 하여 이 꽃을 따가기도 한다는 얘기가 있다.
등꽃이 지고 나면 봄도 진다.
여름날이 시작된다. 등나무군락을 지나 빽빽한 삼나무 숲길은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길이다. 범어사 안에는 청련암 가는 길목에 서있는
수령 580년 된 은행나무와 대웅전 앞의 금송,
일주문 뒤편의 보호수 소나무, 관음전 앞의 웅장한 향나무, 성보박물관 앞마당의
반송과 청정한 대숲 등 찾아볼 큰 나무들이 보물처럼 많다.
범어사에서 내려오는 길을 차를 타지 않고 설렁설렁 걸어서 내려온다.
길가 아득하게 키가 큰 오동나무에도 지금 연보라색 꽃들이 핀다.
사하촌인 상마 마을과 하마 마을 사람들과 아주 옛날부터 정답게 살았을 큰 나무들.
나무들은 말없이 있지 않다. 제각각 생긴 모습과 꽃으로 제 이야기와 몸 부비고
살았던 사람들 이야기를 건넨다. 걷고 있는 동안 눈은 환해지고
마음은 다정해져 혼자 걸어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 끝 ===
2015년 5월12일
천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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