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 쓰리(3)폭포를 아시나요?  

 

양산8경 홍룡폭포 

  

영남알프스 천성산에는 양산8경의 하나인 홍룡폭포를 비롯한 무지개폭포 용소폭포

라는 세개의 걸출한 폭포가 각기 나름의 특색을 지니며 능선 하나씩의 간격으로 억겁

세월을 유구히 흐르고 있다. 무지개 폭포는 과거 동부 웅상면 소재 장흥저수지 상단

계곡에 있으며 그 능선 하나 너머로 원효암 아래 상북면 홍룡사 계곡엔 양산8경의

유명한 홍룡폭포가 절묘히 위치한다. 거기서 화엄늪 능선을 하나 넘어 이슥히 내려

가면 또 다시 하북면 용소리 용소골의 용소폭포가 숨어 있고 우리가 흔히 용소폭포로

알고있는 용수동폭포가 있다. 아무리 크고 유명한 폭포라도 여름에 가뭄이 계속되면

폭포의 위용이 떨어지고 초라하기 마련인데 최근 장마 에 몇개의 태풍이 지나가면서

많은 비가내려 계곡마다 폭포마다 장관을 이룰것예상되어 어느해 여름 홍수가 난

이틑날 울주 언양 부근의 장군폭포를 필두로 양산 천성산 쓰리폭포를 훑어 내렸던

기억을 되살려 천성산 쓰리폭포를 다시금 구경하러 가기로 하였다. 지하철 첫차를 타고

노포동에서 무지개폭포로 가는 마을뻐스를 갈아타기 위하여 덕계 상설시장행 뻐스에

오른다.

 

노포동 터미널 뻐스정류소 웅상방면 양산뻐스 노선 안내도

 

장흥 저수지 16번 마을뻐스 종점 무지개폭포 매표소 공중 화장실

 

 

 

무지개 산장

 

무지개 계곡 소폭 무명폭

 

 

 

 

 

 

 

여기가 무지개 폭포

 

 

 

 

 

 

 

무지개 상단 폭포

 

 

 

 

 

 

 

 

 

전에 없었던 원효암 주차장 통신 중계탑 시

 

양산천 좌우 양산 시가지 좌측끝은 금정산 오른쪽은 물금 오봉산

 

오봉산 토곡산 김해 신어 백두산 방면

 

구름을 뒤집어 쓴 금정산

 

어곡공단 선암 매봉 신선 토곡산 빙면

 

물금 오봉산 방향

 

선암 매봉산 운해

 

홍룡사 내림길 무명소

 

펀백 숲길

 

홍룡사 입구 대형 주치장 1억원짜리 음악이 나오는 유명한 공중 화장실

 

 

 

전에 없었던 홍룡사 일주문

 

 

 

 

 

홍룡폭포 하위 소폭

 

 

 

이것이 양산8경 홍룡폭포

 

 

 

 

 

 

 

 

 

 

 

 

 

 백중절이라 사찰마다 백중절 참배객들로 북적거린다.

 

 

 

화엄벌 오름길에 철이른 싸리버섯 밭을 만났다.

 

천성산 정상부의 운무

 

부산 장산 수영만 배산 윤산 황령 금련산 영도 봉래산이 보인다.

 

금정산 장군봉 고당봉 원효봉 능선이 보인다.

 

금정산과 낙동강 하구 명지 가덕도 거제도 까지

 

화엄벙 억새 밭

 

부산 수영만 샌텀시티 방면

 

화엄 늪 감시초소

 

 

 

 

 

 

 

 

 

신불산 간월산의 운해

 

낙동정맥 금정산

 

양산천 좌우 시가지

 

중앙이 천성산 2봉 비로봉

 

천성산 공룡능선 정족산 하위능선

 

화엄늪 억새밭

 

용소길 하산길에 만나는 또아리 송 

 

 

 

천성산 공룡능선

 

천성산 중앙능선과 비로봉

 

천성공룡

 

양산 용소폭포와 만수동폭포

 

박천수가 쓴 ‘만수동 원운에 차운하여[次晩搜洞原韻]- 골짝의 주인은 교환 김문범이다[洞主金敎桓文範]’라는 제하의 두 수 가운데 첫째 수다.

 박천수(朴天銖. 1869~1951)의 자는 인석(仁錫)이고 호는 묵헌(默軒)이다. 서울대 총장을 역임한 박봉식(朴奉植) 씨의 할아버지다. 고종(高宗) 때 음관(蔭官: 과거를 거치지 아니하고 조상의 공덕에 의하여 맡은 벼슬)으로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從五品官)에 제수되었으며, 삼성동 영동마을에서 살았다. 도량이 넓고 천성이 따뜻하고 부드러웠으며, 일찍부터 시문(詩文)으로 명성이 높았다. 세거지에 육영정사(育英精舍)라는 서당을 세워 향리의 학동들을 가르쳤고, 고을의 친구들과 경현당(景賢堂)을 창건하였으며, 고종 5년(1868)에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된 소노서원(小魯書院)을 복원할 것을 주장하였다. 유고(遺稿)에 ‘묵헌유고’가 있고, 산막 호계산 덕곡에 묻혀있다.

 

 

 

하북면 용연리 용소마을 뒤편 계곡을 따라 약 1㎞ 정도를 오르다보면 높이 20m 정도의 아름다운 사폭(斜瀑)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만수동폭포다. 달리 만수대라고도 불러왔으며, 폭포 바로 위 바위에는 ‘만수동’이라는 각자도 있다. 아마도 이곳을 즐겨 찾았던 초은(樵隱) 김교환(金敎桓)이 새겼으리라. 이 폭포 위에 상삼리의 만석 부자였던 초은이 1936년경에 대를 축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몇 번에 걸쳐 답사한 바에 의하면, 폭포의 위쪽에 낮게 돌로 축대를 쌓아 둔 것 외에는 달리 뚜렷한 유지를 찾지 못했다. 천성산의 정기를 받은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이곳에서 낙수의 물보라로 목을 추겨가면서 득음(得音)을 위하여 시조창객(時調唱客)이 모여든 곳으로도 유명했다 하는데 그 흔적을 볼 수 없어 유감이다. 교환은 이곳을 소재로 두 수의 절구를 남겼는데, 그 원운은 다음과 같다.

 “하늘이 아끼고 땅이 감춰 둔 곳, 묻는 이조차 없는데/ 천지의 원기 모두 겪은 것, 일만 팔천 년이라./ 늦게 찾아내었다 말하지 말라./ 우연히 나를 만나 좋은 인연 이루리.[天 地秘問無人(천간지비문무인) 閱盡鴻 萬八春(열진홍몽만팔춘) 莫道窮搜然後得(막도궁수연후득) 偶因樵者湊良 (우인초자주량인)]”

 2행의 ‘萬八春’은 중국 전설상의 제왕인 삼황(三皇)이 각기 살았던 햇수로서 여기서는 ‘아주 오랜 세월’ 정도로 씌어졌다.

 

 

 

 

만수동 폭포 외에도 용소마을의 동편 400m 지점에는 10여m의 직하(直下) 폭포가 있다. 이름하여 용소폭포다. 물보라를 뿜으며 떨어지는 폭포수의 우뢰 같은 소리는 한 여름의 더위를 식혀 주고도 남으며, 햇살이 비치면 무지개가 물보라 속에서 찬란히 빛난단다. 이 폭포는 숨어 있는 데다 그리 알려지지 않아 붐비지 않는 곳이지만 폭포의 규모는 가히 경탄할만하다. 전해 오는 말에 따르면 옛날에는 이곳에다 명주실을 풀어 넣으면 그 끝이 우틀소를 통하여 울산의 방어진 앞 바다까지 간다고 하며, 절벽 아래 굴속에 용이 살면서 우틀소까지 왕래했다고 한다. 참고로 우틀소는 용소마을 입구의 소(沼)로서 무척 깊어서 ‘위태로운 소’라는 말이 방언으로 ‘우트러운 소’로, 다시 우틀소가 되었다고 한다.

 용소폭포가 잘 보이지 않게 숨어있으면서 제법 큰 소리를 내면서 물줄기가 떨어지기에 수줍어하면서도 씩씩한 산골소년이 연상된다면, 만수동폭포는 비스듬한 바위 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게 한 많은 여인의 하염없는 눈물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두 폭포 사이의 계곡 바닥에 넓은 오석이 깔려 있는데 이 오석 위에 20여 개 정도의 아기 주먹에서 어른 주먹보다 큰 새알이 박혔다 빠져나간 것 같은 흔적이 있다. 이것이 용소에서 용이 걸어 올라와서 남긴 발자국이라 하며, 이 용은 만수동 폭포를 따라 승천했다고 한다. 답사하는 것은 좋은데, 이 계곡물이 주민의 식수원임을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

 

 

 

/엄원대(양산대 교수)

 

만수동 각자

 

만수동 폭포 상단

 

하단

 

 

 

무명 소폭

 

만세 찾았다. 여기가 용소폭포 나도 여태 위 만수동 폭포를 용소폭포라 하엿다,

 

 

 

 

 

천성산 쓰리폭포 탐방 기념물 싸리버섯 선별직전

>>> 끝 <<<

  

2014년 8월10

 

 

천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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