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호계 천성산 마애불 석굴암 탐방도.
양산 호계 천성산 마애불 석굴암 탐방도.
(2021.10.4)
예전에 영남알프스 산행길 대중교통 35번국도를 오가다보면 도로 표지판에
무슨 문화재 명승지 천연기념물이 있다는 글씨를 보게되어 마음으로 메모해
두었다가 후일에 찾아가본 경우가 더러 있었다. 방기리 알바위니 신전리 이팝
나무니 백록리 통도사 국장생석표니 그랬다. 양산 산막공단 깊숙한곳에 호계
마을이 있는데 거기 문화재 마애불과 천성산 석굴암으로 불리는 반고굴사가
있다는 도로 표지판을 보았다. 웹 싸이트에서 양산시청 공보실 블로거가 올린
홍보물도 보았다. 내가 명색이 천성산인데 천성산 석굴암이 있었다니 모르고
있었다니 말이 아니지 싶어서 또 열심히 찾아 가보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산막마을
(山幕-)
경상남도 양산시 산막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 이름의 유래와 관련하여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산골에 막을 치고 살았으므로 산막이라 하였다.
둘째,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원효산에 올라가 막을 치고
하룻밤 쉬어간 곳이라 하여 산막이라고 한다.
셋째, 천성산 기슭에 있는 반고굴(磻高窟)에서 수도하던
원효대사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요석공주(遙石公主)가
산에 막을치고 있었다 하여 산막이라는 설이다.
그러나 설은 모두 세 가지이지만 결국 원효대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산막은 원효대사( 617~686)
와 요석공주(설총의 어머니)와 깊은 연관이 있어 보인다.
네이버 참조
[출처] 양산석굴암 굴법당 양산호계리마애불
천주교 부산성당 양산 기도원
미소바위
너무 외진곳 귀한 암자에 천성산 석굴암이라니 부처님앞에
불초소생 천성산이 엎디어 삼배 하나이다.
경남도 유형문화재96호 호계리 마애불상
천성산 원효암 마애불상보다 엄청 더 크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런데 엄청 뒤늦게 세상에 알려지고 곡절끝에 복원되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양산 호계리 마애불
(梁山虎溪里磨崖佛)
경상남도 양산시 호계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마애불.
양산 호계동 마애불은 커다란 연화 대좌(臺座)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얼굴은
양각, 신체는 선각으로 표현 하였다. 머리는 나발이며 육계는 머리에 비해 작고,
얼굴은 방형에 가까운데, 눈, 코, 입의 표현을 보면 상호가 투박하고 토속적인 인
상을 풍긴다.
신체의 오른쪽 부분은 마모가 심하여 오른손의 수인은 확인할 수 없으나 가슴 부분에
있으며, 왼손은 오른쪽 발바닥 위로 떨어지는 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형식화된 통견의
(通絹衣)를 착의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성글고 투박한 조각 기법에 비해 내의의
표현과 군의의 띠를 비교적 상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광배는 원형의 거신광으로
광배 내부에 장식은 보이지 않는다. 불신에 비해 넓게 새겨진 대좌는 여러 겹의 앙련
좌로 표현되었다.
양산 호계동 마애불은 얼굴과 신체의 표현에서 조각적인 측면과 회화적인 특징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마애불에서는 보기 드문 나발의 머리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불상의 전반적인 표현이 형식화되고 투박한 토속적 조각 수법을 보이고 있어
조선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약 200여 점의 마애불이 조성되었는데, 그중 조선시대의
마애불은 약 10여 점으로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이러한 현재의 상황에서 조선 중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양산 호계동 마애불은 다른 시대의 마애불에 비해 예술성은 다소 떨어
지지만, 삼국시대 이후 지속되어 온 마애불의 전통을 계승한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양산 호계리 마애불 아래에 있는 석굴은 원효대사가 수행했던 '반고굴'(磻高窟)’이
라는 전언이 있어 석굴 사원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네이버 참조
[출처] 양산석굴암 굴법당 양산호계리마애불
앞으로 이 바위에 미륵불을 새긴다는 얘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