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왕피천 계곡산행
울진 왕피천 계곡산행.
우리나라 마지막 오지 왕피천...백패킹
등허리 긁어서 안 닿는 곳’이 울진이라고 했다.
‘택리지’도 ‘한때 유람하기는 좋으나 오래 살기는 불편한 곳’이라고
경북 울진을 기록하고 있다.
왕피리(王避里)는 울진에서도 오지마을.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피신했다 해서 이름이 붙여진 왕피리.
어렵게 났던 신작로마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두메산골이다.
왕피리는 왕피천(王避川)을 더듬어 올라가야 제격이다.
왕과 일행들이 난리를 피해 왕피리를 찾아 갔던 길을 따라 흐른다 해서 붙여진 왕피천.
초입에는 ‘지하 금강’의 비경 성류굴이 자리하고 있다.
왕피천과 불영천이 절경을 연출하며 흘러가는 일대가 통고산 자락.
공민왕이 국운이 기울어감을 통곡하며 넘었다 해서 산 이름도 통고산(通古山 1,607 m)이다.
오지마을이 흔히 그렇듯 왕피리에는 겨우 몇 만 모여 있어도 제각각 불리는 이름들이 다 있다.
하나같이 예쁘고 깜찍한 우리말 이름들이다.
속사,시 목,병위,임광터,뱀밭,햇내,거리굿,시리들,동수골….
왕피리에서도 공민왕이 숨어 있었던 곳은 ‘임광터’였다고 마을 어른들은 전해주고 있었다.
“왕이 숨어 있었다는 표지는 없어도 이야기가 그렇게 전 해져”
떠도는 전설을 나침반 삼아 왕피천을 따라 들어온 오지마을.
공민왕이 전란 피해 숨었다는 오지계곡
왕피천은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발원해 울진군 서면과 근남면을 거쳐 동해로 흘러드는
총 연장 68km의 긴 하천이다.
높은 산과 절벽으로 둘러싸인 왕피천은 예로부터 접근이 어려운 곳이었다.
그 덕분에 오랜 세월 때 묻지 않은 비경을 간직하게 됐다.
한 때 일부 구간의 개발로 심한 오염에 시달렸지만 지금은 깨끗이 치유된 상태다
왕피천(王避川)이란 이름은 울진군 서면 왕피리에서 따온 것이다.
고려시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까지 들어왔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1994년 이후 정착한 한농복구회 유기농공동체를 중심으로 12개 마을
9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왕피천 가운데 길이 없는 구간은 울진군 서면 왕피리 속사 마을부터 근남면 구산리 상천동까지
5km 사이.문명세계에서 벗어나 호젓한 강물에서 즐기는 강줄기 트레킹의 최적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지역은 교통이 매우 불편해 대중교통을 이용한 접근이 대단히 어렵다.
자가용으로 왕피리나 상천동으로 접근해 트레킹을 시작한 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이
가장 무난한 트레킹 법이다.
길은 따로 없다. 첨벙첨벙 물을 헤치고 강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한다.
강물이 크게 한 굽이를 돌면 사방이 막힌 적막강산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락치 않은 왕피천은 물고기의 천국이다.
바닥이 보이는 깨끗한 물속에 고기들이 쉬지 않고 헤엄치고 있다.
순박한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즐기며 강줄기를 따라 걷다보면 여름의 더위는 까맣게 잊을 수 있다.
물속을 걸어가며 여름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것이 강줄기 트레킹의 묘미다
작은 폭포가 형성된 곳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오른쪽으로 굽도는 강줄기를 따라
넓은 모래밭을 통과하면, 정면에 왕피천 중에서 가장 절묘한 풍광을 지녔다는 용소가 보인다.
여기가 가장 위험한구간인 용소라는 곳인데 수영하여 내려가는 방법과 산으로 우회할 수도 있다
강물이 잠시 머물다 가는 이곳은 수심이 깊은 데다 양옆이 수직절벽으로 둘러싸여 헤엄쳐
건너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다. 남쪽 지능선으로 난 우회로를 이용하면 도보로 통과가 가능하다.
왕피천의 핵심 경관인 용소.헤엄쳐서 건너지 못하면 산을 넘어야 한다
우회로를 통과하면 용소 바로 위로 뚝 떨어져 내려선다. 비포장도로가 끝나는 곳에서 이곳까지는
약 1시간 거리. 용소를 통과하면 왕피천은 평범하게 변한다. 잔잔한 강을 둘러싼 산자락은 두루뭉실
하고 하상의 바위도 큰 특징이 없다.
백패킹이란?
'배낭을 지고 걷는다'는 뜻이다.
이나 계곡을 중심으로 걷거나 헤엄치며 주로 오지 마을을 끼고 협곡 여행을 하는것이 원칙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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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16
대한민국 자유산꾼
★ 천성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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